솔직히 저는 1년에 100권을 읽는다는 분들을 보면 의심부터 했습니다. 정말 제대로 읽은 걸까, 그냥 넘긴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런데 제가 직접 목표를 정해 독서량을 늘려보니, 생각보다 가능한 일이더군요. 물론 방법이 있었습니다. 김범준 교수님의 독서법을 참고하면서 제 방식을 더했더니, 책을 읽는 속도와 질이 동시에 올라갔습니다. 이 글에서는 1년에 100권 독서를 가능하게 하는 구체적인 방법과, 책을 제대로 기록하고 선택하는 노하우를 공유하겠습니다.

정독과 속독, 어떻게 균형을 맞출까?
많은 분들이 "1년에 100권"이라는 숫자를 듣고 가장 먼저 떠올리는 질문이 있습니다. "그렇게 빨리 읽으면 제대로 이해할 수 있나요?" 저도 처음엔 같은 고민을 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해보니, 모든 책을 같은 방식으로 읽을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저는 책을 세 가지 레벨로 나눕니다. 첫 번째는 '의무 독서'입니다. 독서 클럽이나 추천사 의뢰로 읽어야 하는 책들이 여기 해당됩니다. 이런 책은 최소 두 번 이상 읽습니다. 첫 번째 읽을 때는 펜을 들고 밑줄을 치고 메모를 남기며 지저분하게 읽습니다. 두 번째는 밑줄 친 부분만 집중해서 보면서 A4 용지 10~20장 분량으로 요약합니다. 이 과정을 거치면 책 한 권이 완전히 제 것이 됩니다.
두 번째는 '관심 독서'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분야나 궁금한 주제의 책들이죠. 이런 책은 정독하되, 모든 부분을 같은 속도로 읽진 않습니다. 목차를 보며 아는 내용과 모르는 내용을 먼저 구분합니다. 아는 내용이라도 저자만의 독창적인 시각이 담긴 부분은 '집중 구역'으로 설정해서 천천히 읽습니다. 여기서 핵심은 논리가 꺾이는 접속어(하지만, 반면, 그러나)를 놓치지 않는 것입니다. 이 지점에서 저자의 진짜 주장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는 '가벼운 독서'입니다. 출퇴근 시간이나 이동 중에 읽는 소설이나 에세이가 여기 속합니다. 이런 책은 속독으로 읽되, 마음에 드는 문장이 나오면 잠시 멈춰 펜으로 밑줄을 긋습니다. 저는 좌석 버스를 주로 이용하는데, 수원에서 서울까지 가는 1시간 동안 집중하면 책 한 권의 1/3은 충분히 읽을 수 있습니다.
제 경험상 가장 중요한 건 '무조건 끝까지 읽기' 원칙입니다. 어렵거나 지루한 책도 일단 손에 들었으면 끝까지 봅니다. 헤겔의 '정신현상학'은 20년째 읽고 있지만, 언젠가는 끝낼 겁니다. 다만 예외가 하나 있습니다. 과학적으로 명백히 잘못된 내용을 담은 책은 버립니다. 제레미 리프킨의 '엔트로피'가 그 경우였습니다. 엔트로피(Entropy)란 열역학 제2법칙에서 나온 개념으로, 고립계에서 무질서도가 증가하는 경향을 나타내는 물리량입니다. 쉽게 말해 에너지가 쓸 수 있는 형태에서 쓸 수 없는 형태로 변해가는 정도를 수치화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책은 엔트로피에 '나쁜 것'이라는 가치 판단을 담아 과학 개념을 왜곡했습니다(출처: 한국물리학회).
병렬 독서도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저는 보통 2~3권을 동시에 읽는데, 중요한 건 비슷한 주제의 책을 함께 읽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소설과 과학책, 인문학 책과 역사책처럼 결이 다른 책을 병렬로 읽으면 내용이 섞이지 않습니다. 오늘 이곳에 오면서도 두 권을 번갈아 읽었습니다.
독서 기록과 책 선택, 이렇게 하면 됩니다
책을 많이 읽는 것도 중요하지만, 읽은 내용을 제대로 기록하고 활용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저는 2016년부터 지금까지 읽은 모든 책을 구글 문서로 정리하고 있습니다. 각 책마다 짤막한 독후감과 감상평, 기억하고 싶은 문장을 메모합니다. 2018년에 108권, 2022년에 97권을 읽었는데, 이 기록 덕분에 몇 년 전에 읽은 책도 금방 떠올릴 수 있습니다.
독서 기록 방법(SQ3R)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Survey(훑어보기): 목차와 서문을 먼저 읽어 책의 구조 파악
- Question(질문하기): 각 챕터에서 궁금한 점을 미리 메모
- Read(읽기): 집중 구역은 정독, 나머지는 속독으로 진행
- Recite(요약하기): 밑줄 친 부분을 중심으로 핵심 내용 정리
- Review(복습하기): 책 뒷면에 서명과 함께 '이 책이 던진 가장 묵직한 질문' 기록
저는 책 뒷면에 읽은 날짜와 서명을 남깁니다. 특별히 좋았던 책에는 '엑셀런트(Excellent)'라고 적습니다. 카를로 로벨리의 '첫 번째 과학자, 아낙시만드로스'는 세 번 연속 엑셀런트를 받은 책입니다. 이 책을 읽으며 저는 과학적 사고(Scientific Thinking)의 본질을 다시 생각하게 됐습니다. 과학적 사고란 관찰 가능한 현상을 바탕으로 논리적 추론을 통해 자연의 원리를 찾아가는 사고 방식을 말합니다. 아낙시만드로스는 BC 6세기에 이미 지구가 우주 공간에 떠 있다고 주장한 최초의 인물입니다(출처: 서울대학교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
책 선택은 어떻게 할까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도 고르지 못합니다. 매년 5만 권 이상의 신간이 쏟아지는데, 그중에서 딱 맞는 책을 찾는 건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대신 저는 몇 가지 채널을 활용합니다.
첫째, 신문의 신간 소개 코너입니다. 매주 금요일 종이신문에 실리는 신간 목록을 확인하고, 흥미로운 책은 바로 주문합니다. 둘째, 책에서 책으로 이어지는 연결고리를 활용합니다. 조앤 베이커의 책을 읽다가 에드거 앨런 포의 '유레카'와 볼테르의 '미크로메가스'를 알게 돼서 바로 샀습니다. 이렇게 책 한 권에서 두 권의 추천을 받으면, 읽고 싶은 책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납니다. 멜서스의 인구론처럼, 읽고 싶은 책은 기하급수로 증가하지만 실제 읽을 수 있는 책은 산술급수로만 늘어나는 게 독서의 숙명입니다.
셋째, 주변 사람들의 추천입니다. 제가 존경하는 과학자가 페이스북에 "이 책 정말 재밌었다"고 올리면 대부분 믿고 삽니다. 취향이 비슷한 사람의 추천만큼 확실한 건 없습니다. 넷째, 출판사에서 보내주는 신간입니다. 최근에는 추천사 의뢰도 늘어나서, 의무 독서 비중이 커진 건 조금 아쉽지만 좋은 책을 먼저 만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독서는 다른 사람의 머릿속에 들어가 그 사람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창입니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게 있습니다. 책은 세상을 닮았지만, 책이 세상은 아닙니다. 책에서 읽은 지식이 전부가 아니며, 실제 세상은 책보다 훨씬 복잡하고 예측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저는 책을 읽으면서도 항상 '이 내용이 내 경험과 얼마나 일치하는가'를 따져봅니다. 동의할 땐 느낌표(!), 의문이 들 땐 물음표(?), 반박하고 싶을 땐 X표를 여백에 남깁니다. 단순히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비판적으로 걸러내는 과정이 진짜 독서입니다. 여러분도 자신만의 독서 기록 방식을 만들어보시길 바랍니다. 책을 읽고 나서 "이 책이 나에게 던진 가장 묵직한 질문 하나"를 적어두는 것만으로도, 독서는 완전히 다른 경험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