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저도 처음엔 우리나라가 로봇 밀도 세계 1위라는 통계를 보고 '그래도 우리 기술력이 괜찮은가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제조 현장과 관련된 자료들을 살펴보면서 깨달은 건, 로봇을 많이 쓰는 것과 로봇을 만드는 기술력은 완전히 다른 문제라는 점이었습니다. 2024년 기준 국내 생산 현장에 설치된 로봇은 약 3만 대, 노동자 만 명당 로봇 밀도는 1,220대로 세계 평균의 7배나 됩니다(출처: 국제로봇연맹). 하지만 정작 이 로봇들의 핵심 제어시스템은 대부분 외국산입니다.

제어시스템, 이미 게임은 끝났다
일반적으로 로봇 산업 하면 완성된 로봇의 모습만 떠올리기 쉽지만, 제 경험상 진짜 핵심은 제어시스템(Control System)입니다. 여기서 제어시스템이란 로봇의 모든 동작을 지휘하고 감시하는 두뇌 역할을 하는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의 결합체를 의미합니다. 사람으로 치면 중추신경계와 같은 존재죠.
현재 글로벌 시장은 지멘스(Siemens), 로크웰 오토메이션(Rockwell Automation), 미쓰비시 일렉트릭, 하니웰, 에머슨 같은 기업들이 완전히 장악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수십 년간 축적된 기술력과 산업 현장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어서, 신규 진입자가 따라잡기가 거의 불가능한 수준입니다. 더 충격적인 건, 중국조차 자체 제어시스템을 갖추고 있는데 우리는 경쟁력 있는 국산 제어시스템이 사실상 전무하다는 점입니다.
제어 기술의 격차는 단순히 하드웨어 성능 차이가 아닙니다. 실시간 데이터 처리 능력, 안정성, 기존 생산 시스템과의 호환성까지 모든 부분에서 압도적 차이가 납니다. 국내 기업들이 완성 로봇을 만들어도 결국 핵심 제어 부품은 수입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피지컬AI 시대, 우리는 어디에 있나
독일은 이미 오프라인 공간에서 실제 로봇이 다양한 공정별 인간 동작을 모사하며 훈련하는 안드로이드 로봇 훈련장을 구축했습니다. 피지컬 AI(Physical AI)란 물리적 세계에서 직접 작동하고 학습하는 인공지능을 뜻하는데, 쉽게 말해 화면 속이 아닌 실제 공간에서 움직이고 배우는 AI입니다. 이들은 공정별 데이터를 추출해서 AI 학습에 활용하고 있죠.
제가 생각하기에 우리도 새만금 같은 곳에 비슷한 인프라를 만들어야 합니다. 일제, 중국제, 한국제 부품이 들어간 실제 로봇으로 인간 작업자 대체용 공정별 동작 모사 훈련장을 구축하는 겁니다. 여기서 피지컬 AI 학습용 데이터를 추출하고, 동시에 부품별 장단점과 신뢰성을 평가해야 한국산 부품의 경쟁 우위 요소나 시장 진입 가능성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습니다. 세계 로봇 생산의 약 40%는 파나소닉, 야스카와, 화낙 같은 일본 기업이 차지하고 있고, 우리나라는 3~5% 수준에 불과합니다(출처: 산업통상자원부). 일본은 1970년대부터 로봇을 연구해왔고, 핵심 부품인 감속기, 모터, 제어기의 원천 기술을 모두 보유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국산화율이 30~40% 수준에서 정체돼 있죠.
피지컬 AI 시장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로봇 시장 규모는 2024년 902억 달러에서 2030년 2,055억 달러로 6년 만에 약 2배 이상 성장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문제는 이 시장을 미국, 독일, 일본 기업들이 선점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들은 이미 파운데이션 모델(Foundation Model), 즉 다양한 환경에 적용 가능한 범용 AI 모델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파운데이션 모델이란 특정 작업에만 국한되지 않고 여러 분야에 응용 가능한 대규모 AI 모델을 의미합니다.
부품생태계, 뿌리부터 다시 봐야 한다
일반적으로 로봇 산업이라고 하면 완성된 로봇 제조사만 떠올리기 쉽지만, 실제로는 부품 생태계가 더 중요합니다. 일본은 로봇 완성 기업, 부품 전문 기업, 자동화 시스템 통합 기업까지 유기적으로 연결된 산업 생태계를 갖추고 있습니다. 반면 우리나라는 완성 로봇과 시스템 자동화 기업 중심으로만 발전해서 부품 생태계가 상대적으로 빈약합니다.
국내 기업들이 자율 용접 AI 모델을 개발하고, 배관 제작에 협동 로봇을 투입해서 시간은 줄이고 품질은 높이는 성과를 내고 있는 건 사실입니다. 어떤 업체는 제조 로봇이 차량 부품의 생산 조건을 데이터화하고 불량품을 골라낸 뒤 포장까지 마무리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서 생산성을 4배 늘리고 불량률을 10분의 1로 줄였습니다. 6~7년 전부터 현장 자동화를 시작해서 MES(제조실행시스템)의 확장판인 MOM(제조운영관리) 시스템까지 구축한 곳도 있죠.
하지만 이런 성과들도 결국 외국산 핵심 부품 위에서 이뤄진 겁니다. 제 생각엔 부품 단위부터 경쟁력을 확보하지 않으면, 아무리 완성 로봇을 잘 만들어도 결국 핵심 기술은 외국 기업들이 가져가는 구조가 반복될 겁니다. 삼성전자나 현대차 같은 대기업 현장에는 로봇이 많이 설치돼 있지만, 정작 중소 제조업체들은 여전히 자동화 비율이 낮은 것도 문제입니다.
새만금 같은 곳에 실증 훈련장을 만들어서 다양한 부품의 성능을 비교하고, 데이터를 축적하고, 국산 부품의 신뢰성을 검증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경상도를 중심으로 한 국내 로봇 산업의 경쟁력을 실질적으로 끌어올릴 수 있습니다. 단순히 로봇을 많이 설치하는 것에서 벗어나, 로봇을 만드는 기술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전환해야 할 때입니다.
피지컬 AI가 빠르게 다가오고 있는 현실에서, 우리가 대응해야 할 문제들은 명확합니다. 제어시스템 기술 자립, 부품 생태계 육성, 그리고 실제 환경에서 학습 가능한 AI 인프라 구축. 이 세 가지가 갖춰지지 않으면, 로봇을 아무리 많이 써도 핵심 기술과 수익은 결국 외국 기업들이 가져갈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이라도 뿌리 기술에 투자하고, 장기적 관점에서 생태계를 구축하는 노력이 절실합니다.